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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희망찬 새해에 하나님 사랑과 은총이 미주지역과 온누리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맞이는 붓으로 하얀 여백 위에 그려질 한 편의 그림을 상상하며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건들보다 가장 우리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입니다. 하루는 우리 생애의 축소판입니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입니다. 내일의 탄생이 이어져 내년이 되고, 내년의 탄생이 축적되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시간의 궤도를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시간을 대나무처럼 마디 있는 단위로 여깁니다. 대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마디입니다. ‘마디’를 의미하는 한자가 바로 ‘절’(節)입니다. 대나무는 일정한 간격으로 마디를 만들고 마디에서 가지를 냅니다. 시간은 마디가 없지만 마치 시간이 매듭지워진 것처럼 우리는 어제와 오늘을, 작년과 올해를 시간 마디로 구분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매듭지워진 단위로 묶습니다. 그것은 늘 돌아보면 실수와 후회로 점철된 과거를 매듭짓고 보다 밝고 희망찬 시간을 맞이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한 가득한 2018년을 일단락 짓고 2019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 희망이 결기로, 그 결기가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내년이라는 시간의 새 마디에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일과 내년은 언제나 올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단할 수 없는 내일과 내년에 기대기보다 우리 생애의 축소판 같은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새해에는 매 순간을 우리 생애의 꽃봉오리인 것처럼 현재라는 시간을 열정적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때다.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 수 있는가.” 14세기 독일 신비사상가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á Kempis)의 말입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현재 속에서 신실하게 노동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거짓과 싸우며, 하나님 사람으로 더욱 다듬어지는 그런 해가 되기 소망합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입니다(벧후 3:8). 신앙은 길이나 양이 아닌 두께나 질으로 잽니다. 세상의 질서를 전복하는 역설과 반전 가득한 신앙 세계가 낯설지 않고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질 때, 일상 속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뜻에 조율된 시간으로 살아갈 때, 그 시간이 비록 짧다 하더라도 신실한 믿음이 온축된 하이 퀄러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 은혜 가운데 우리 모두가 일상 시간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기 바랍니다. 나아가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복음의 진보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전력투구할 수 있는 그런 한해로 삼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 속에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교세 감소, 교회 고령화, 자녀세대 교회 이탈, 선교 정체, 신학인구 감소, 교회재정 감소라는 교회 내부의 어려움과 이민자 감소, 급속한 세속화, 반복음적 가치 팽배, 이단 증가, 이슬람세력 확장, 과학만능주의, 물신주의 등과 같은 교회 외부의 도전 또한 갈수록 드세지고 있습니다. 가히 총체적 위기 상황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란 단어는 위험과 기회를 함께 내포합니다. 위기를 위기로만 보지 말고 그것을 호기로 선용(善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신앙공동체의 연대와 결속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속의 거센 파고를 넘어 2019년을 무사히 항해하려면 예수님의 고별설교 한 구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된 거룩한 공동체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파괴된 세계 질서와 자신의 형상을 회복하시고자 이 땅에 크고 작은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 공동체, 부족 공동체로서의 열두 지파, 국가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을 이끈 제자 공동체, 디아스포라 지역에 세워진 유대 회당 공동체, 크리스천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은 태초부터 인간 역사 속에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해 오셨습니다. 새해에는 미주지역 한인 교회가 하나님의 온전한 공동체가 되어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고 변혁하는 데에 함께 매진할 수 있기 소망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 신앙의 결기와 혼신의 기도를 발판으로 삼아 성취됩니다. 교회 안팎의 여러 도전에 맞서 여러분 모두 범사에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시기 기원합니다.

이상명 목사(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