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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 후배에게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상대여성이 내건 결혼조건은 결혼교실 수료. 현명한 신붓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 뭔지 모른 채 덜컥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가 험난한 신혼을 보내는 커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LA에서 어바인까지 15번을 오가며 결혼교실을 마친 후 신부를 맞았다.
청춘뿐 아니라 노년도 일생에 한번 있는 일이다. 처음 늙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잘 늙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노인학 클래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 한번 들어보자, 우리가 다 노인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니-.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8주 코스인데 하루 저녁 듣고 말았다. 대신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노인학 교수님을 찾아 갔다. 개인교습으로 축약본 강의를 부탁드리는 것 같아 염치없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어쩌랴, 형편이 그렇게 된 걸.
미주 장신대의 김용환 교수는 ‘노인’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온 사람이다. 한국에는 노인복지 외에는 노인학(Gerontology)과 관련된 유의미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에모리 대학에서 석사,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Ph.D를 하면서 그는 노인을 공부했다. 학위 논문은 한인 이민노인들의 절망을 키에르케고르의 절망개념으로 살펴 본 것. 설명을 해줬지만 어려웠다.
김 교수는 우선 노인 프로그램의 초점은 ‘노인을 위한(for)’ 것이 아니라 ‘노인과 함께(with)’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인은 나눠줄 수 있는 것이 많은 분들인데 사회가 귀 기울이지 않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커뮤니티를 돌아보니 그의 지적에 공감이 갔다.
여러 곳에서 섬기느라 애쓰지만 막상 노인들이 경험이나 일손을 나누며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플랫폼이나 통로는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노인 자원봉사를 개발하고, 그 봉사가 가능하도록 지원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섬김의 방향이 잡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지금은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시대. 클릭 한번에 지식이 좌르륵 쏟아져 나온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 이 시대에, 노인들이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민 1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같으면 다 포기했을 것을 그 분들은 해낸 일이 많아요. 부족한 것 투성이어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존경할 만한 분들 아닌가요?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 분들이 해내고 이루신 걸 너무 당연시 하고,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세대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노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노인 스스로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이 흔한데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 받아들이고, 함께 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노년의 행복과 지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전히 과거 속에 사는 노인도 적지 않다. 예컨대 ‘왕년에-’가 너무 잦거나, 도가 지나친 ‘태극기’에게서 이런 심리가 읽힌다. 지금은 활기찰지 모르지만 화장으로는 더 이상 가려지지 않는 늙음을 깨달았을 때, 한 순간에 무너지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우려가 크다.
반대로 노화를 너무 무방비로 받아들이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무기력이 지배하게 된다. 노인은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 점차 변화하는 연속성 아래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므로 여전히 나는 중요한 인격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균형잡힌 정체성, 건강한 자화상이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성숙한 노인’, 백발이 영광이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노인학은 우산과 같은 학문이다. 그 안에 의학, 심리학, 복지, 교육, 사회학 등 노인과 관련된 학문들이 모두 아우러져 있다. 김용환 교수와 같은 노인 전문가들이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다면 우리 커뮤니티의 노인 프로그램과 사역이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침 USC는 노인학으로 유명한 대학이기도 하다.
연방 중소기업청(SBA)의 스코어(SCORE) 프로그램은 은퇴중역들이 각 분야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나눠 주는 곳이다. 필요한 이들은 여기서 값진 정보와 조언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같은 프로그램이 한인사회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의류, 식품, 의료, 재정, 보험 등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은퇴자들이 많은가. ‘죽음 준비’ 캠페인의 전 단계로 ‘노인 준비’ 캠페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상호 논설위원>